셜록홈즈 2014. 6. 24. 14:51

winter night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채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쿨럭거리는 기침소리가 221B에 울려 퍼졌다.

 

"자네, 감기라도 걸린 겐가. 홈즈?"

 

절친한 친구의 물음에 홈즈는 그의 지정석인 벽난로 앞자리에서 조금 뒤척였다. 뒤이어 꽤나 격렬한 기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마지막 사건이후로 조금 무리하더니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홈즈, 대답 좀 해보게."

 

"…….“

 

대답조차 하지 않은 홈즈를 보며 왓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사건 때 범인을 잡겠다고 그 춥디추운 초봄의 밤을 불씨하나 없이 보낸 게 화근인 듯 했다. 폐 깊은 곳에서부터 그르렁거리며 토 해내는 듯한 홈즈의 기침소리에 왓슨은 걱정되었지만 억지로 치료하려 해봤자 홈즈가 짜증만 낼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정리하던 홈즈의 사건파일로 눈을 돌렸다. 저러다 심해지면 어련히 알아서 자신을 찌를 게 눈앞에 선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펜 놀리는 소리만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끼익-하고 날카로운 의자의 삐걱임이 조용했던 방안의 정적을 깨부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잔뜩 심술이 난 채 의자를 확 젖혀버린 홈즈의 행동이 방안의 정적을 부순 것이었다.

 

"런던 시내의 똑똑한 범죄자들은 죄다 개구리인게 분명하네! 런던이 이렇게나 잠잠하다니!"

"평화롭고 좋은데 뭘 그러나."

"지난 사건으로부터 벌써 3주나 지났단 말일세! 왓슨! 이러다가 없는 병도 생길 것 같구먼!"

"홈즈, 자네는 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줄 알아야 할 것 같네."

"내 머리가 녹슬다 못해 오래된 스펀지케이크처럼 변하는 건 사양하고 싶네."

"스펀지케이크보단 말린 정어리처럼 변할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홈즈, 자네 목소리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약을 좀 먹는 건 어떤가?"

"왓슨, 나는 아주 멀쩡하다네. 아주 약간 목이 잠긴 것일 뿐일ㅅ…. 쿨럭! 쿨럭!"

 

불평을 해대던 홈즈는 듣는 사람의 목도 아파올 정도로 격렬하게 기침하고는 그대로 으르렁대며 다시 벽난로 쪽으로 돌아앉아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름 홈즈의 흥미를 끄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홈즈가 몹시 기뻐하며 사건에 몰두해버렸기에 홈즈의 기침 같은 사소한 일은 금방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넣어진 채 금세 잊혀 지고 말았다.

 

 

 

금방 가라앉을 것 같았던 홈즈의 감기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리고 홈즈의 몸 상태도 여전히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약간 불안해 보이는 몸 상태와는 달리 척척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에 왓슨은 조금 불안해져갔다. 홈즈가 그 탁월한 연기력으로 자신을 속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지만 이번만큼은 연기가 아닌 진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홈즈의 행동이 이번에도 연기라면 왓슨은 또 자신만 전전긍긍하다 나중에 홈즈에게 놀림 당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왓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천식에 걸린 노인처럼 그릉거리는 홈즈를 어딘가 찜찜한 눈으로 응시 할 수밖에 없었다.

 

“왓슨,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어서 하게.”

 

한참을 홈즈를 바라보던 왓슨은 정곡을 찌르는 홈즈의 말에 멋쩍은 듯 두어 번의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자네 정말 괜찮은 거 맞나?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듯 한데….”

“왓슨, 또 그 소린가? 자네가 의사인 것은 알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네. 그저 좀 기침이 오래갈 뿐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요 몇 주간은 비도 내린데다가 상당히 쌀쌀했으니 감기가 오래 갈수밖에 없잖나.”

 

정말 단순한 환경의 탓 인걸까, 하는 의문이 왓슨의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여유로운 표정으로 파이프에 불을 붙이는 홈즈를 보며 왓슨은 홈즈의 기침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기로 하고 다른 일에 시선을 돌렸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자신의 은사에게서 온 긴급한 전보를 받게 된 왓슨은 평소엔 들고 다니지 않던 커다란 왕진가방에 자신의 의료도구들과 약병을 우겨넣다시피 챙기기 시작했다. 급하게 온 전보 안에는 자신의 은사였던 교수님이 상당히 위독하다는 것과 꽤나 가까운 사이었던 자신을 보길 원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의대 다니던 시절부터 거즌 20여년을 알고 지내던 은사였기에 왓슨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빠뜨린 것은 없는지 가방을 살펴보았다. 그런 심각한 표정의 왓슨을 창가에 기대서 가만히 관찰하던 홈즈는 주섬주섬 주머니 속을 뒤적여 편지봉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다급하게 방문을 나서려는 왓슨의 손에 건네주며 열어보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소파에 기대어 파이프로 소파손잡이를 톡톡 치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건 뭔가?”

“급행 기차의 표일세, 왓슨. 자네에게 필요할 것 같아 미리 예약해놨지.”

 

그가 알고 있는 홈즈라면 이런 사소한 배려 따위를 할 인물이 아니었지만 때마침 기차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왓슨에게 그런 사소한 문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정에 가까운 이 시각에 기차표를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기에 왓슨은 기차표를 예약해준 홈즈에게 다음에 오케스트라를 예약해주겠다는 말을 하고는 다급하게 지나가는 마차를 타고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숙집 창문에서 왓슨이 탄 마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홈즈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잔뜩 긴장되었던 몸과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아직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절친한 벗인 왓슨을 속일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능한 의사인 왓슨은 금세 홈즈가 아픈 것을 눈치 챌 것이 분명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국 최고의 탐정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조차 풀 수 없는 문제에 머리가 아파왔다. 왓슨이 자리를 비운 동안 생각이라도 정리해보자는 심정으로 홈즈는 자신의 파이프를 꺼내들어 입에 물었다. 담뱃잎을 채워 넣고 불을 붙이려는 그 순간 묵직하면서도 저릿한 숨통을 죄어 오는 통증에 홈즈는 일순 몸을 굳혔다. 아, 또 시작이다. 홈즈는 그 익숙하면서도 견디기 힘든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책상서랍을 뒤적여 익숙한 자신의 주사기를 꺼내어 들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눈을 살짝 돌려 주사기 안의 용액을 확인하고는 홈즈는 그대로 자신의 동맥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싸한 이물감이 드는 액체가 빠르게 동맥을 따라 퍼지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저주 같았던 흉부의 고통은 천천히 밑으로 가라앉았다.

 

올 초 들어 자꾸 흉부가 답답하다 싶었다. 기관지는 욱신거렸고 약간의 미열과 함께 몸도 뻐근해지기에 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감기가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메마른 듯했던 기침이 시간이 지날수록 폐 속 깊은 곳으로부터 질척한 타르를 뱉어내는 듯한 소리로 변해갔다. 오랫동안 흡연을 해왔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단정하고 깔끔했던 자신의 숨소리는 어느새 오래 된 오크통에 바람이 통하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로 바뀌어져있었다. 여기까지는 사건을 해결하다 생긴 피로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 전 아침, 평소보다 배로 질척한 느낌이 흉부를 가득 채웠다. 어서 끄집어 내버리고 싶은 역겨운 질척거림에 홈즈는 발작처럼 기침을 해댔다.

 

“쿨럭! 쿨럭! 켁, 쿠헉….”

 

한참 동안 폐를 그대로 내뱉을 것 같은 기침을 해댄 홈즈는 폐가 오그라드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간신히 숨을 정리했다.

그런데 문득 입 안에 찝찔한 맛이 감돌았다. 워낙 심하게 기침을 해대서 어디 입술이라도 깨물었나 싶어 세면대로 가 거울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입가에 피 칠갑을 한 채 뱀파이어와 같은 창백한 얼굴을 한 홈즈 자신이 있었다. 어지간한 시체들은 다 보아온 홈즈라지만 입가에 피 칠갑을 한 채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은 상당히 기괴해보였다. 홈즈는 재빨리 자신의 입을 헹구고는 세면실을 나왔다. 라이헨바흐 이후로 이렇게 실감나는 죽음은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은 라이헨바흐와는 차원이 다른 죽음이었다. 라이헨바흐는 자신의 지력을 총동원해서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지만 이건 절대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죽음이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런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정의 몸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홈즈는 불현듯 숨이 턱 막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이 꽉 막힌 밀실에 갇힌 사람처럼 답답함이 느껴졌다. 라이헨바흐의 느낌보다 강렬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는 듯했다.

늘 앉는 벽난로 앞, 그 자리에 차분히 앉은 홈즈는 불씨가 거의 사그라 들어 가는 벽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겉 표정은 평소처럼 냉철해 보였지만 머릿속은 누군가가 진흙발로 밟고 지나간 것처럼 지저분하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홈즈는 그 특유의 침착함과 이성으로 금세 자신의 머리를 가라앉혔다.

일단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주변에 알려서는 안 된 다고 판단한 홈즈는 평소 변장하던 실력을 살려 창백한 자신의 얼굴을 꾸몄다. 그리고는 최대한 기침을 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담배를 더 피워댔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는 감각은 마치 지옥 불에 자신의 폐를 지져버리는 듯한 뜨거운 고통이었지만 한동안 기침을 하지 않게 되었기에 홈즈는 이를 악물고 그 잔인한 고통을 이겨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홈즈는 최대한 왓슨의 눈을 피해 자신의 병을 조금이나마 치료해 줄 의사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건진 건 마약성 진통제들뿐이었다. 홈즈의 몸 안에 자리 잡은 병마는 시시각각 홈즈의 몸을 좀먹어 가며 그 세력을 꾸준히 키워나갔다.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몽롱함만이 남았다. 이완 되어 느릿하게 내뱉어지는 숨소리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진득한 느낌만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홈즈, 이번엔 뭔가? 코카인? 아니면 모르핀?’

 

홈즈는 느릿하게 몸을 뒤척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들린 목소리가 약으로 찌든 자신의 뇌가 만들어 낸 환청임을 알고 있었지만 홈즈는 느긋하면서도 지독하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코카인 7%용액은 추천 할 만하네, 왓슨. 정말로.”

 

어디선가 왓슨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것도 환청이겠지. 흐리멍덩한 흙탕물 속에 잠기는 듯한 감각에 몸을 맡기며 홈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늘 앉던 난로 앞 소파에서 가만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홈즈를 일으킨 것은 또다시 시작 된 지옥 같은 통증이었다. 덩달아 같이 튀어나온 발작 같은 기침에 홈즈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아 소리죽여 기침을 토해냈다. 비릿하고 역겨운 피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입을 막았던 손사이로 질척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흐르는 피의 찝찝함을 느낄 새도 없이 폐를 잡아 뜯는 격한 감각에 홈즈는 절로 고개를 숙이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약, 약이 필요했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쉬며 홈즈는 통증으로 뻣뻣하게 굳은 팔다리를 움직여 간신히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미 수차례의 투여로 인해 주사 구멍으로 벌집이 되어버린 왼쪽 팔뚝의 동맥에 세차게 주삿바늘을 내리 꽂았다. 주사기 안에 든 용액이 그대로 동맥에 뒤섞이는 감각에 홈즈는 본능적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통증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홈즈는 가시지 않는 통증에 으득하고 이를 갈고는 거칠게 손을 뻗어 책상 서랍 안을 뒤적여 진통주사를 한 개 더 꺼내고는 그대로 다시 한 번 고동치고 있는 팔뚝의 동맥에 내리 꽂았다. 이물질이 동맥에 투여되는 느낌이 감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맹렬하게 들끓던 통증이 다시금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통증으로 날카로웠던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느릿한 박자로 변해갔다.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의 약을 투여한 홈즈는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 별로 쓸모없다고 여겨왔던 감정들이 북 받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홈즈는 어딘가 멍한 눈으로 주사기가 꽂힌 자신의 팔뚝을 응시했다. 그리고 실소했다. 지독한 비참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가득 찬 방안에 울려 퍼졌다. 홈즈는 천천히 무너져 내려갔다.

다음날, 왓슨에게서 짧은 전보가 왔다.

 

‘사정이 생겨서 돌아가는 게 좀 늦을 것 같네, 미안하네. -JH-’

 

전보를 보며 홈즈는 쓸쓸해 보이면서도 우는 듯한 기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거의 열흘 만에 베이커가로 돌아온 왓슨은 가만히 자신의 하숙집 창문을 올려다 보았다. 사위가 어둑함에도 불빛 한 점 없는 모습에 왓슨은 약간 의아해 했지만 방안에 홀로 있을 그의 절친을 떠올리며 하숙집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잠옷에 숄만 걸친 허드슨 부인이 그를 맞이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녀를 보며 왓슨은 자연스럽게 홈즈의 안부를 물었다.

 

“오, 홈즈씨라면 박사님이 떠나시고 난 다음날 급한 사건이 있다면서 떠났답니다.”

 

평소에도 종종 사건이 있다며 자릴 비우는 홈즈였기에 왓슨은 허드슨 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평소와 같이 혼잡한 방을 둘러보며 왓슨은 이곳저곳 늘어진 신문조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스크랩당해 누덕누덕해진 신문조각들을 집어들며 한곳으로 던져놓던 왓슨의 눈에 낯익은 물체가 들어왔다. 자신과 같은 의사들이 종종 사용하는 갈색의 조그마한 약병들이 방안 곳곳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홈즈가 사건 때문에 무슨 화학실험이라도 한 것일까 싶어 왓슨은 약병을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에 왓슨은 눈살을 찌푸렸다.

 

‘[ cocaine ]’

 

자신이 없는 새에 이렇게나 많은 약을 투여했던 것일까. 그렇게나 무료했던 것일까. 왓슨은 홈즈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 떠나기 전 어쩐지 창백하게 보이던 홈즈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왓슨이 221B로 돌아온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후에야 홈즈는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본 홈즈의 모습에 왓슨은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걱정스러웠다. 조사로 인한 변장이 아닌 이상 개인적인 청결함과 칼 같은 단정함을 유지하는 그였는데. 지금 자신이 보는 홈즈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벼랑 끝의 끝까지 몰려 누군가 살짝만 떠밀면 바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기묘한 위태로움에 왓슨은 그의 안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네 괜찮은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흔히 건네는 안부인사가 아닌 진심이 담긴 묻는 것을 들은 홈즈는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신의 병을 감추기 위해 변장을 했음에도 자신의 병색을 알아보는 오랜 친우에게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숨겨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그런 의문은 머리 한구석으로 밀쳐졌다. 홈즈는 왓슨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경험했던 친구에게 또다시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홈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네. 오히려 꽤나 특이한 사건 하나가 나를 꽤나 즐겁게 만들어 주어서 기분이 아주 좋은 편이지.”

 

그 말이 사실인 걸까.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늘 언제나 홈즈를 믿어온 왓슨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가 의심스러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니 내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몽롱한 느낌에 왓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째서인지 상복으로 보이는 검정드레스를 입은 허드슨 부인이 자신의 옆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인걸까. 왓슨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좀 더 살펴보았다. 다소 간소해 보이는 예배당 앞쪽에 누군가의 관이 놓여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하니 자신역시 아는 사람인 듯 했다. 장례식은 거의 끝나 가는지 앞에서부터 차례로 사람들이 일어나 앞쪽에 놓인 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어느덧 왓슨의 순서가 되었다.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이상 마지막 인사정도는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왓슨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관에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져 갈수 록 알 수없는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답답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에 왓슨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간신히 불안해하는 자신을 진정시킨 왓슨은 차분히 관 안에 누운 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왓슨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핏기하나 없이 창백한 모습으로 그리고 단정하면서도 신사다운 그러면서도 눈에 익은 사내의 모습에 왓슨은 말을 잃고 말았다.

 

“…홈즈, 어째서 자네가….”

 

믿기지 않은 상황에 왓슨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관에 누운 이에게 뻗었다. 차갑고 서늘한 시체의 감촉이 손끝에 느껴졌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왓슨의 눈이 뜨였다. 전신에 흥건하게 배어든 식은땀에 몸이 끈적거려왔다. 악몽인가. 아플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에 왓슨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을 느꼈다. 악몽을 꿔서 그럴까. 홈즈의 안부가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홈즈의 살아있는 모습을 봐야해. 허겁지겁 침대를 박차고 나온 왓슨은 다급하게 자신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텅 빈 방이 눈에 들어왔다. 늘 앉아 있던 난로 앞 지정석에 그가 없었다.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는 걸까. 왓슨은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자신의 바로 옆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텐데, 왜 이리 불안한 것일까. 왓슨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 시키며 그의 방 문고리를 잡았다. 그 순간 희미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격렬한 기침 소리, 마치 몸 안의 모든 것을 뱉어낼 것만 같은 기침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있는 힘껏 죽인 채 비어져 나오는 소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노력한 듯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잘 들리지도 않는 희미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의 근원지가 홈즈의 방임을 깨달은 왓슨은 다급히 그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갑작스러운 발작이었다. 왓슨이 없는 새에 몰래 대륙까지 가서 치료를 받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온 몸을 날카롭게 찔러오는 고통에 홈즈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헉헉 거렸다. 그러나 고통은 잔혹하게 그의 숨통을 조였다. 진통제, 진통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고통은 사정없이 그를 내리쳤다. 진통제를 찾아 뻗은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바로 옆 탁자 서랍 안에 있을 진통제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죽어가는 짐승의 마지막 발악처럼 홈즈는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고통에 찬 절규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막힌 듯한 어린아이가 울다 지쳐 내는 듯한 끅끅거림만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나올 뿐 이었다. 생전 자신이 신을 찾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했는데. 지금 이 순간 홈즈는 간절히 빌었다. 자신을 살려 달라고, 아니 이 악마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지독한 무신론자의 고통스러운 절규가 신에게 닿은 것일까. 거짓말처럼 굳게 닫혀 있던 홈즈의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홈즈는 고통에 흐릿해진 눈을 올려 자신에게 뛰쳐 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 역시. 신 따윈 존재하지 않았어. 자신의 병을 가장 숨기고 싶었던.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몰랐으면 하는 대상이 고통에 이를 악물고 있는 자신을 안아 든 채 잔뜩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왓슨.”

 

홈즈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자네에게만큼은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며 흔드는 왓슨의 얼굴을 바라보며 홈즈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떠보니 자신은 어느새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얼마나 이를 악물어 댔는지 입안이 시큰하게 저려왔다. 몸이 묵직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누워있는 것은 홈즈의 성격에 절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억지로 묵직한 몸을 일으킨 홈즈는 자신의 침대 한 쪽에서 새우잠을 자는 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밤새도록 돌봐 준 것인지.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잠든 왓슨을 바라보며 홈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들통 나고 말았구나.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없는 사건까지 만들어가며 대륙에 다녀온 것인데. 씁쓸함과 동시에 어딘지 모를 개운함에 홈즈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음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 글렀구나.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홈즈는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왓슨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

 

“어, 음…. 나 안 졸았…. 자네, 몸은 좀 괜찮나?”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친우의 얼굴에 홈즈는 그저 가만히 웃어만 보였다.

 

“지금은 괜찮네.”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자네가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일걸세, 왓슨.”

“…병명은 뭐라고 하던가? 나을 수는 있는 겐가?”

“…미안하네.”

 

자신의 사과에 절망적으로 변하는 왓슨의 얼굴을 보며 홈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설사 그것이 자신이 원한 게 아니었더라고 해도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탓이었다.

 

“왜 내게 말해 주지 않은 겐가?! 내가 못 미더웠던 겐가?! 난 의사일세! 자네보다 자네의 몸 상태를 더 잘 돌봐줄 수 있었네! 그런데 왜! 이지경이 될 때까지 숨긴겐가! 자네가 말 못하는 어린애도 아닌데! 왜 이런겐가!! 나를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은 하지 말게! 내가 고작 자네가 아픈 것 가지고 벌벌 떨 위인으로 보이는 겐가?!! 아, 그래 자네가 죽어가는 걸 알고 있었다면 힘들어하고 자네를 걱정 했겠지. 하지만!! 미리 말해줬다면!!! 자네가 이렇게 되기 전에 말해줬다면 나 스스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을 걸세!!! 라이헨바흐 때와 같은 일은 죽어도 겪고 싶지 않네…. 자네를 허망하게 잃고 상심하고 싶지 않네. 자네가 무슨 의도로 자네의 병을 숨겼는지 굳이 묻지 않겠네. 하지만 난 자네의 친구일세, 홈즈!”

 

홈즈를 향해 맹렬히 비난하는 말을 내뱉으며 왓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좀 더 일찍 그에게 따져 묻지 않았을까. 불안하다고 느꼈을 때부터 그를 닦달해서라도 답을 얻어 냈어야 했는데.

 

“…왓슨, 내가 죽어간다는 건 허드슨 부인에게는 비밀일세. 물론 마이크로프트에게도 마찬가지일세.”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병을 알리지 말라는 홈즈의 말에 왓슨은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그런 소리 말게! 자네가 죽기는 왜 죽나! 아직 안 늦었을지도 모르네. 그렇게 포기하지 말게! 내가 아는 자네는 그렇게 쉽게 놓는 사람이 아닐세!”

“이미 해볼 수 있는건 다 해봤네. 자네 몰래 만난 의사만 해도 아마 그동안 만났던 의뢰인들의 숫자보다 많을 걸세.”

“….”

“그들 모두 내게 권한 건 진통제 뿐이었네.”

“….”

“아마 짐작컨대 난 얼마 살지 못 할 걸세.”

“그런 말 하지 말게.”

“이제야 말해서 미안하네.”

 

홈즈의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륵그륵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홈즈의 숨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왓슨에게는 작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아니 버릇이라고 보기에는 강박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니 홈즈가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때문에 왓슨은 약간 강박증처럼 홈즈를 지켜보고 보호 하게 되었다. 자신의 병이 알려진 순간 홈즈 역시 대강은 짐작하고 있던 행동이었기에 홈즈는 자신에게 조금 더 헌신적으로 대해주는(홈즈의 입장에서 보자면 약간 귀찮을 정도였다.) 왓슨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홈즈 입장에서는 왓슨에게 일일이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몸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었고 자신이 죽기 전에 풀어야 할, 그리고 풀고 싶은 문제들은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죽기 전에 홈즈는 온전히 자신을 사건을 푸는 것에 집중시키고 싶었다.

 

“-홈즈, 자네 요즘 무리 하는 것 같은데. 괜찮나?”

 

난로 앞 지정석에서 손끝을 모은 채 집중하고 있는 홈즈를 보며 왓슨은 걱정스럽단 듯 물어왔다.

 

“…왓슨, 오늘만 해도 난 자네의 걱정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되네만.”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서 그 소릴 하는 겐가?”

“난 괜찮네.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제만 해도 창백한 얼굴로 피토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았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네, 왓슨. 내 사지가 멀쩡히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많은 사건을 접하고 풀어보고 싶네. 그러니 너무 그렇게 날 걱정해 주지 않아도 되네. 사람의 정신력은 예상외로 강한 법이거든.”

“정신력도 정신력이지만 우선적으로 몸이 받쳐줘야 하는 걸세, 홈즈,”

 

자신의 잔소리에 귀찮다는 듯 몸을 돌려버리는 홈즈를 보며 왓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좀 과하게 걱정한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래도 왓슨은 걱정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홈즈가 발작하는 횟수는 점점 잦아졌다. 각혈하는 횟수 역시 눈에 띄게 증가했다. 홈즈의 생기 넘치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으며 강철 같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만 무리해도 눈에 띄게 피로해 하는 것이 보였다. 가을 앞둔 지금은 누가 봐도 홈즈가 아프다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허드슨 부인까지 홈즈에게 안부를 물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즈는 거의 닥치는 대로 사건을 맡았다. 꺼지기 전의 촛불이 가장 밝다고 했던가? 홈즈의 모습은 딱 그 모습이었다. 홈즈는 자신의 남은 힘을 다해 사건에 몸을 던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홈즈의 모습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은 왓슨 뿐 이었다.

 

 

 

날씨가 제법 추워져 가는 어느 이른 겨울, 쿨럭 거리는 기침 소리가 런던 교외의 작은 별장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격렬하지도 길지도 않은 그저 메마른 듯한 기침 소리가 하숙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왓슨, 미안하지만 내게 파이프 좀 가져다주지 않겠나?”

 

런던에서 가장 위대했던 탐정은 어느새 그 찬란한 위용을 잃어버린 채 다 늙어빠진 노인처럼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생기 넘치고 건강했던 몸도 어느새 인가 바짝 마른 나뭇가지와 같이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절친한 친우인 왓슨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형인 마이크로프트 역시 홈즈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홈즈가 자신이 병문안 가는 것을 원치 않음을 알고 있기에 묵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색색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자신을 응시하는 홈즈의 모습에 왓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파이프가 있는 난롯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홈즈가 지내고 있는 교외의 작은 별장의 내부는 그들이 오랫동안 지내왔던 하숙집의 내부와 꼭 닮아있었다. 그래서 일까 홈즈는 이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는 듯 해보였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자리에도 앉지 못한 채 그저 침대에만 누워 가만히 창밖을 관찰하며 이따금씩 지나가는 이들의 신상을 간단하게 추리하는 것을 낙으로 삼은 친우의 모습을 보며 왓슨은 약간은 침울한 마음으로 그의 파이프에 담뱃잎을 채워 넣었다. 환자에게 담배라니. 다른 의사들이 보았다면 펄쩍 뛰고 말릴 행동이었지만 이미 생의 빛이 꺼져가는 홈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정도 밖에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왓슨은 성냥과 함께 그에게 그가 애용하는 파이프를 건네주고는 그대로 옆에 앉아 집필을 하기 시작했다. 홈즈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버리기 전에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우이자 런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탐정의 일생을 어떻게든 세상에 남겨놓고 싶었다. 고요했던 방안에 혼탁한 담배연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이 내려 앉아있었다. 날씨가 꾸물거린다 싶더니 이내 톡톡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딱 듣기 좋을 만큼의 빗소리가 사방에 가득 울려 퍼졌다. 펜이 종이를 긁는 사각거림과 놀라울 만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귀를 간질였다. 그 고요하면서도 안정되는 소리에 왓슨은 저도 모르게 펜을 쥔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현실도 꿈도 아닌 애매한 감각이 느껴지는 찰나, 왓슨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네, 왓슨.”

 

순간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고맙다니. 뭐가? 왓슨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홈즈가 누워있는 침상을 바라보았다. 왓슨의 불안한 느낌과는 다르게 홈즈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아주 평범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평범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왓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홈즈에게 다가갔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어왔다. 아, 설마. 아니겠지. 제발…. 마침내 왓슨이 홈즈가 있는 침상에 도달한 그 순간, 홈즈의 손에 쥐여진 그의 파이프가 가만히 굴러 떨어졌다. 왓슨은 자신의 감이 들어맞았음을 깨달았다. 침묵이 들어찬 방안을 빗소리만이 조용히 채워갔다.